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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사렘즈 롯의 주민들은 체감하기 어려운 사실이겠지만, 도시 밖 일반인들에게 있어 옛 뉴욕은 여전히 진한 색을 품어 관광 도시로서의 로망을 이루기 충분한 곳이다. 사실 생환율 3할이니, 온갖 입에 담기도 어려운 범죄의 온상이니, 악몽이 일상처럼 판친다느니 하는 것들은 직접 겪어보지 않는 이상 다소 멀게 느껴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게다가 안그래도 유명하던 도시에 무려 ‘이계’가 섞여들어가지 않았는가. 바깥에선 절대 구경할 수 없는 조합인 탓에 까다로운 심사와 무자비한 물가, 멸종하다시피한 시민 안전에도 불구하고 옛 뉴욕, 헬사렘즈 롯에 관광객이 끊기는 일은 없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유명했던 곳들은 특히나 그랬다.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흐린 햇살을 만끽하며 산책하기 좋은 센트럴 파크와 자유의 여신상, 밤이 다가올수록 더욱 빛나는 타임 스퀘어와 엠파이어 스테이트. 그리고 여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같은. 

 

 주민들에게는 메트met라는 애칭으로 더 친숙한 이곳은 주류를 따라 아예 이계의 미술품만을 전시하기 위한 부속 건물을 신설했다. 지구의 언어로는 감히 발음하기도 겁나는 긴 이름의 전시관은 이계의 유명한 건축가가 친히 설계해주었다는 후문이다.

 그래서인지 전시관으로 향하는 복도에서부터 음울하게 벼려져 이 세상의 것은 아닌 아름다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칼날이 돋은 아가리 속으로 속절없이 빨려들어가는 감각.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은 일반인이 대충 보아도 알 정도로 이질적인 기운이 그곳에 머물렀다. 관광객이 매료되기엔 충분한 조건이다. 처음 개방하고서 한동안은 경비 시스템이 마비될 정도로 사람이 몰렸다는 이야기를 레오나르도도 익히 전해들었다. 

그러니 원래였으면 레오 혼자서는 절대로 가지 않을 곳임이 분명하다. 그치만 오늘 레오의 목적지는 바로 그곳이었다. 이름이, 아, 뭐, 뭐더라? 하여튼 그 전시관. 아직 레오는 가본 적 없지만…… 여전히 사람이 많고 경비는 한층 더 삼엄해져 마치 전설 속 고대의 미궁 같을 그곳. 

 

   “ 눈으로 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그림이라니. ”

 미셸라가 좋아했으면 좋겠다. 레오는 실실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추기 힘들어 팸플릿으로 슬쩍 입가를 가렸지만, 점점 빨라지는 발걸음은 영 주체가 되지 않았다. 결국 레오는 참지 않고 커다랗게 웃어버렸다. 옅은 햇볕이 붉은 벽돌로 울긋불긋한 시가지를 희미하게 감싸는 이른 오후였다. 


 

🏛️


 

 아무리 평일 낮이라고는 하나 메트는 그게 무색할 만큼의 압도적인 인파로 붐볐다. 여러 인외 종족과 인간들이 줄지어 늘어진 고대 이오니아식 기둥을 사이에 두고 한데 뒤섞여 꼭 괴상망측한 파도처럼 울렁거렸다. 다년 간의 경험을 통해 섣불리 저기 뛰어들었다가는 그같은 땅꼬맹이의 갈비뼈 몇 대 쯤이야 툭 부러질 수 있다는 걸 잘 알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레오는 무사히 대리석 계단을 빠져나와 전시관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레오가 이번 전시에 대해 듣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미셸라의 생일이 다가와 선물을 고민하던 중 체인이 슬쩍 귀띔해준 것이다. 문제의 전시관에서 진행되는 특별전은 그 넓은 공간을 전부 빌려 열리는 만큼 주민들의 관심이 높은 모양이었다. 영예의 주인공은 요즘 이계에서 떠오르는 신인 예술가로, 무려 시각이 없는 종족 출신이라 더 큰 화제가 되었다. 동그라한 조약돌을 닮은 그녀는 시각이라는 감각에 구애받지 않는 만큼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다채로움으로 캔버스를 덮어 여러 돌멩이에 저장해놓았다고 했다. 일종의 데이터화인 셈이다. 

 그리하여 음울하고 아름다운 공간에 전시되는 건 오로지 투박한 돌멩이들 뿐이었다. 무수히 쌓아올려진 자갈밭을 거닐며 관람객들은 원하는대로 돌을 주워 그 안의 그림을 ‘느끼는’ 방식이었고, 인당 돌 하나씩은 기념품 삼아 가져갈 수도 있다고 했다. 

 

 그게 바로 레오의 목적이었다. 자그마한 돌 하나. 

레오는 그 안에서 미셸라와 가장 어울리는 풍경을 찾아 돌아오는 생일 선물로 보내주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서둘러야 했다. 관람시간은 정해져있는데 돌은 한정되어 있으니, 빨리 들어가서 많이 줏어보고 가장 좋은 걸 가져가려는 생각이었다. 조급해진 마음을 깨달으면 이미 뛰다시피 걷고 있다. 묘한 긴장감이 자꾸 어깨를 두드리는 와중, 평소라면 하지 않을 걱정까지 계속 들고 마는 건 아무래도 선물 목적이니 그런 것이려나…….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모퉁이를 꺾으려다말고 레오는 불현듯 깨달았다.

어라, 여기 너무 조용하지 않나?

바깥에 사람이 그렇게나 많았는데.

생각이 끝맺어지기도 전에, 어둠 속에서부터 길다란 손이 튀어나와 순식간에 레오를 붙들었다. 

  “ 와아악!!! 억, ”

  “ 쉿, 쉬이잇! ”

 다급하게 입을 막는 손은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데에 반해 전혀 강압적이지 못했고 오히려 그 덕에 레오는 빠르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라이브라의 말단으로 구르다보니 생긴 깜냥으로, 레오는 눈 앞의 존재가 그를 해치려는 생각이 없다는 걸 금세 눈치챘다. 

아니나다를까, 짙은 그림자를 휘감은 채로도 푸르게 빛나는 두 눈이 레오를 걱정스레 내려다보고 있었다. 레오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너무도 오랜만에 보는 푸른 색이다. 바깥의 하늘이 가득 담긴 눈이 미안하다는 듯 휘어지더니 곧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귓가에 스몄다.

 

  “ 갑자기 미안해. 특별전 관람하러 온 거지?”

  “ 어, 네에……. ”

  “ 지금 저 안에, 음…… 다른 관람객들이 인질로 잡혀있어서 말야, 우리까지 들어가면 곤란해질 것 같거든. ” 

  “ 아~ ”

 

 그렇군요. 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사람이 안 보이는 것도 이해가 됐다. 희끄무레한 연기처럼 안이 들여다보이는 걸 보면 결계라도 친 듯 싶었다. 스티븐 씨나 크라우스 씨에게 연락해야하나? 인질이라 함은 무기를 가진 이가 있다는 뜻일테니까……. 생각이 꼬리는 무는 와중 눈 앞의 이는 아무래도 걱정됐는지 아예 레오를 감싸 제 뒤로 슬쩍 밀어놓고는 안쪽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테러 자체는 헬사렘즈 롯의 일상이나 다름 없으니 그리 특별할 것 없었으나, 이런 모습은 이 마경의 주민이 다 된 레오에게는 퍽 신선하게 다가왔다.

 

  “ 저어, 혹시 바깥에서 오셨어요? 여기 사는 사람들은 이런 게 일상이라 나름 괜찮거든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

  “ 아, 그래……? 그래도 위험하지 않으려나. 응, 여행 왔어. ” 

 신혼 여행……. 조그맣게 덧붙인 그가 수줍게 웃었다. 아무리 봐도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 미소였는데, 레오는 그것과는 다른 의미로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아니, 신혼 여행을 이딴 데로 온다고?! 대체 어쩌다. 왜?!

 레오의 생각을 뒷받침하듯 전시관 안쪽에서부터 마구잡이로 쏴갈긴 총성이 결계 밖까지 빗발쳤다. 더 붙어 서라고!! 괴상한 고함 소리도 질세라 따라붙었다. 그가 두 손을 떼고 안쪽을 고갯짓하고서야, 레오는 그가 총성에 맞춰 귀를 막아줬다는 걸 깨달았다. 레오는 약간 멋쩍은 기분으로 그와 함께 슬쩍 전시관 내부를 살폈다. 가까이 붙으니 안의 상황이 좀 더 확실히 눈에 들어왔다. 사실 둘은 그냥 입구 기둥 뒤에 엉거주춤 서있을 뿐이었는데, 그것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저 테러리스트들은 아마추어인 듯 싶었다. 

 

  “ 이 미친 인간 놈들, 왜 이렇게 굼떠?”

  “ 야, 결계 설치 제대로 된 거 맞지? 뭐가 울리는 것 같은데. ”

 “  제대로 됐으니까 울리지, 멍청아. ”

 아, 그런가? 쉽게 납득한 테러리스트는 물갈퀴가 달린 손으로 제 뒤통수나 벅벅 긁어댔다. 그 옆에 선 땅딸막한 술사가 고개를 젓고는 애꿎은 인질들에게 괜한 드잡이질을 하는 게 보였다.

 범인은 대여섯명의 이종족 테러리스트다. 머리가 있는 부분을 차지한 촉수다발이 꼭 제각기 다른 생물처럼 움직이는 게 레오의 시야에 선명히 박혔다. 무시무시하게 생긴 것 치고 제대로 된 경비조차 서지 않는 걸 보니 자신이 있거나, 생각이 없거나 둘 중 하나일텐데……. 레오는 스스로의 경력 아닌 경력을 미루어 후자라고 판단했다. 그도 그럴 게, 쟤네들조차도 돌 줍기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계에서 알아주는 예술가라더니 집단으로  테러까지 벌여가며 독차지할 정도로 인기였던 건가, 하는 터무니 없는 생각이 스쳤다.

 그나저나 이제 어떡한담.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은 아닌 것 같긴 하지만, (물론 어디까지나 마경의 주민 시점으로.) 이계인과 인간이 저런 식으로 부딪힌 이상 그의 훌륭한 상사분들께 알리긴 해야했다. 그래도 여기서 전화하면 분명히 들킬테고……. 잠시라도 저들의 눈을 돌릴 만한 미끼가 필요할 것 같은데.

그 즈음, 곁에서 그런 레오를 가만히 바라보던 이가 입을 열었다. 

 

  “ 혹시 도움을 구할 만한 곳이 있어?”

  “ 네, 근데……, ”

  “ 그러면 내가 틈을 만들어 볼게. ”

 만에 하나 또 다치게 된다면 울프우드가 화내긴 하겠지만, 아주 잠시라면 괜찮을지도 몰라. 나 이런 거 잘 하거든. 레오는 이해하지 못할 말들을 중얼거린 그가 주섬주섬 일어섰다. 에헤헤, 멋쩍은 웃음이 그 뒤를 따랐다. 그가 기둥 그림자 밖으로 한 발자국 벗어나고서야 레오는 드디어 그를 제대로 마주볼 수 있었다.

그는 생각보다 키가 크고 화려한 미인이었다. 빛조차 파묻혀버릴 것처럼 까맣고 짙은 머리카락과, 그에 적잖이 대비되는 흰 살결에는 레오는 가늠하지도 못할 온갖 상처가 즐비하다. 캐주얼한 옷차림에 특이하게 생긴 주황색 선글라스를 얹은 게 푸른 눈과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레오를 돌아보며 싱긋 웃는 눈동자에 오래된 장난기와 결의가 깃든다. ……그리고 분명 레오의 시야에서만 흘러넘칠 새하얀 날개들과 깃털, 그것들로 이뤄진 무수한 촉수의 아우라. 레오는 의안을 부릅 떴다. 

마치 다 알고 있던 것처럼 정체 모를 미인이 속삭였다.

 

  “ 짐 좀 부탁해?”


 

🏛️


 

 뭐, 뭐, 뭐라는 거예요, 이리 오세요 제발!!! 

레오의 소리 없는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싱긋 미소짓고는 결국 기둥 그림자를 빠져나갔다. 쓸데없이 결연해보이는 뒷모습을 안달복달 바라보며 레오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솔직하게 말해서 당장이라도 튀어나가 말리고 싶지만, 무려 신혼 여행을 왔다는 일반인을 저렇게 보내도 괜찮은 건가 싶지만…… 그는 정말이지 이런 수라장이 굉장히 익숙해보였다. 또, 그만이 가진 아우라가 마냥 일반인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다. 레오는 이 도시에서 생활하며 그런 것은 처음 보았다. 성경에 언급되는, 인간에게 두려움과 경외심을 동시에 심어주기 위해 강림한다는 천사를 휘감은 듯한, 혹은 그 자신이 곧 천사인 듯한 아우라.

 어쨌든 잘은 몰라도 레오 자신보다 믿음직스러운 건 확실했다. 그러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지원군을 부르기 전까지만이라도 시간을 끌 수 있다면 그걸로 괜찮을 거라고 은연 중에 생각했는데!

 

  “ 이 새끼는 뭐지?”

  “ 몰라, 미친 놈인가봐. 야, 방금 뭐라고 했냐?”

 꺽다리 이계인이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인간 침 대신 튀긴 구정물의 모양을 따라 치이이익, 하며 바닥이 부식된다. 그 모양을 바라보던 그가 애써 웃는 얼굴로 한 번 더 말했다. 꼭 아이 보듬듯 다정한 어조였다.

  “ 아니, 있지이. 너희도 관람 온 것 같아서. ”

  “ 같아서?”

  “ 총으로 누군가를 위협하는 것보다 다같이 보는 게 더 재밌지 않을까? 돌은 많잖아. 아니면 내 거라도 줄게. 응?”

  “ 네 건 어딨는데?”

  “ 어, 여기 바닥 어딘가에……. ”

  “ 이 새끼가? 이건 다 우리 거야! ”

  “ 아하하, 알지, 알지. 그래도 이 많은 걸 두고 싸우기보단 사람들이랑 나누는 게 더 좋지 않겠니?”

  “ 그게 왜 더 좋은데?”

  “ 그야 세상은 사랑과 평화로 가득 차는 편이 좋으니까! ”

 그러면서 망설임 없이 피스 사인을 뽐내며 해맑게 웃는 게 아닌가. 러브 앤 피스! 이쯤 되면 문제의 테러리스트들 뿐만이 아니라 붙잡혀있던 관람객들, 바깥에서 급박하게 스마트폰을 두드리던 레오까지도 벙찌고 만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가 입을 다물었고, 레오는 통화 버튼을 연타하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격하게 말렸을텐데요!!

 그가 한 일은 간단했다. 메트 지도를 보란듯이 펼쳐들고 저벅저벅 걸어들어가서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테러리스트에게 길을 물어본 것이다. 그의 팔뚝만한 총을 어깨에 둘러멘 테러리스트에게 말이다. 참으로, 테러리스트의 화를 돋구기 충분한 자연스러움과 능청스러움이었다. 성질을 못 참은 테러리스트는 이번엔 침 대신 총을 빼들어 바닥에 내팽겨쳤다. 탕! 꼭 총소리같은 게 울려퍼져 인질들은 물론, 뒤에 숨어있던 레오까지 퍼드득 떨게 만들었다. 

테러리스트는 축축한 주먹을 그의 턱 밑까지 들이대며 씨근덕거렸다. 

 

  “ 이 정신 나간 새끼가, 내가 오늘 처음 총 들어봤다고 아주 만만하게 보이는 모양인데! ”

  “ 그, 그런 건 아니었어. 미안해~ 근데 있지, 총은 진짜 내가 잘 알거든? 들어봤자 하등 쓸모도……. ” 

 퍽! 후려쳐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짧은 비명이 인질들 사이를 울렸다. 그는 힘을 이기지 못해 두어 걸음 물러섰고, 레오는 헛숨을 들이켰다. 소년, 무슨 일 있나? 핸드폰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레오가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었다. 

  “ 그, 어, 저기, 메트 신설관인데 테러리스트들이 전시를 독차지해서!! ”

 - ……그 전시라는 게 혹시,

  “ 근데, 모르는 분이 갑자기, 자기가 해보겠다고, 제 생각엔 꽤 아슬아슬한 상황 같아서요!! ”

 와중에도 그 ‘모르는 분’과 테러리스트의 덤앤더머같은 대화는 끊기지도 않고 계속 됐다. 흐르는 코피를 닦을 생각도 없어보이는 그는 여전히 눈 앞의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내가 못 쏠 줄 알아?!! 아이, 그러지 말고! 내가 잘못했어, 응? 우선 총은 내려놓자~ 씨근덕거리는 테러리스트 뒤로 슬슬 동료들이 모여드는 걸 보니 이대로 두었다가 정말 큰일 날 것 같아 레오는 발만 동동 굴렀다.

 그런 다급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핸드폰 너머의 상대는 한참 말이 없었다. 하아아아……. 이윽고 지긋지긋한 한숨을 내쉰 스티븐은 다른 이에게 뭐라 전달하는 듯 했다. 와중에 뭐가 깨지고 터지고 고함 지르는 소리가 이쪽인지 저쪽인지 분간이 가지 않아 핸드폰 쥔 손에 자꾸만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 잠시 뒤, 스티븐이 말했다.

 - 거긴 해결될 거야. 전담반이 출동했거든.

  “ 네?”

 - 운이 좋았네, 소년.

 

 아니지, 좋다고 할 수 있나……? 그가 평소답지 않게 말 끝을 흐려서 레오 또한 금방 대꾸하지 못했다. 애시당초 해결될 거라는 말부터 이해하기 힘들었다. 전화하는 와중에도 전시관 안에서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실랑이가 계속되고 있었고, 그는 거의 다수에게 둘러싸여 밟히기 직전으로 치닫는 상황에서도 꽃처럼 웃고만 있어 보는 사람의 속을 울렁거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오는 스티븐을 믿었다. 그가 해결될 것이라 장담했으니 해결은 될 것이다. 

아니 그런데, 어떻게?

 철컥, 하는 장전 소리가 갈피를 못 잡는 생각을 강제로 고정시킨다. 소스라치게 놀란 레오가 황급히 고개를 든 바로 그 순간, 잔뜩 약이 오른 테러리스트들 위로 이계 양식의 아름다운 천장이 그보다 더 큰 소리를 내며 무너져내렸다. 쾅!! 하는 폭발음이 어중간한 결계를 무너뜨릴 듯 뒤흔들다 사그라들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전시관 안, 자욱한 연기 사이로 거대한 인영이 뛰어내리자 그는 기다리던 사람을 만난 것처럼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 울프우드, 나 여기 있어! ”


 

🏛️


 

 스티븐의 말이 맞았다. 울프우드라고 불린 이가 등장하자마자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어중이떠중이 팬보이들의 모임이었던(듯한) 테러단은 금세 진압되었고, 이내 전시관은 풀려난 인질들과 무수하고도 영롱한 돌 무더기, 경찰 외 기타 등등으로 가득 찼다. 레오는 일렬로 연행되는 테러단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곧 문제의 ‘그’와 ‘그의 울프우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결계가 걷힌 뒤 다시 본 그는 꽤 상태가 심각했다. 벌겋게 부어오른 옆얼굴은 커다란 거즈로도 멍이 가려지지 않아 울긋불긋했고, 입 안도 다 터져 피가 고인 것 같았다. 잡혀있던 인질들 중 다친 사람이 없는 이유는 그가 나서서 그들에게 돌아갈 돌을 대신 맞았기 때문이라고 레오는 생각했다. 레오가 손을 흔들자 꼭 혼나기 직전의 강아지처럼 주눅 들어있던 그가 신이 나 마주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그런데 그런 그를, 곁에 서있던 울프우드가 냅다 후려갈겼다.

  “ 이 문디가, 뭘 잘 했다고 처웃나!! ”

  “ 아파!!! 나 환자거든?! ”

  “ 무슨 일 있음 전화하라고 폰까지 쥐어줬는데 쓰지도 않고, 어?”

  “ 그, 그래도 잘 해결됐는데……. ”

  “ 가서 거울이나 보고 말해라! ”

 “ 저기……. ”

 한창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레오에게 꽂힌다. 여전히 순하고 푸른 눈망울은 그렇다 치더라도, 선글라스에 한꺼풀 가려지고도 흉흉하게 번뜩이는 눈동자는 레오가 감당하기에는 조금 무서웠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하나 망설이는 찰나, 놀랍게도 울프우드 쪽에서 먼저 레오에게 말을 걸어왔다.

  “ 아, 니가 갸가. 스티븐이 말한 꼬맹이. 레오라고 했나. ”

  “ 스티븐 씨를 아세요?! ”

  “ 잘 알지. ”

 니가 전화한 덕에 내가 달려올 수 있었으니까. 스티븐이 말한 전담반이 나다, 이 말이지. 별 거 아니라는 듯 대꾸한 울프우드는 습관인 것처럼 셔츠 안쪽에서 담배를…… 꺼내려다 도로 집어넣었다. 옆에서 울프우드와 레오를 번갈아보던 이가 담뱃갑 든 손을 꼬집은 탓이다. 여기 금연이야, 울프우드. 내도 안다. 레오는 또다시 티격대기 시작한 둘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하고 궁금한 질문을 꺼내놓았다. 

  “ 그, 신혼여행 이라고 들었는데 어쩌다…… 이런 곳까지?”

 그때까지도 부루퉁한 얼굴이던 그는 놀랍게도 입을 다물었다. 답을 해준 건 의외로 울프우드였다. 

  “ 우리 빗자루가, ”

우리 빗자루.

  “ 뭐 선물 받은 게 있다는데 여기서밖에 못 받는 물건이라. 나도 겸사겸사 전 직장 들리고. ”

  “ 아하……. 지인 분이 이계인이신가봐요! ”

  “ 으, 으응. 그렇지 뭐~ ”

 그런데 이것저것 더 얘기해줄 거라 생각했던 이가 신기해하는 레오를 피해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는 게 아닌가. 순간 레오의 머릿속에 전구 하나가 켜졌다. 어라, 이거 그건가. 설명도 제대로 안 해주고 받고 온다고만 했다가 이 사단이 나고 만 건가? 단 한 톨의 망설임도 없이 태풍의 눈에 뛰어들었던 방금 전의 모습을 생각하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옆에서 더 말해보라는 듯 종용하는 울프우드는 이미 소리 없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오늘 하루를 몽땅 투자하고서라도 대체 누구에게서 뭘 받으려다가 이 사단을 냈는지 탈탈 털어내겠다는 의지가 돋보였다. 그걸 본 순간 레오는 이만 빠질 때가 됐음을 깨달았다. 자고로 어디가 됐든 커플 사이에 꼈다가 좋은 꼴 봤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전시는 내일 다시 오면 되겠지. 그는 꼭 도움이라도 구하는 것처럼 애탄 눈으로 레오를 올려다봤지만, 이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레오는 보란듯이 한 걸음 물러나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 감사합니다, 두 분 다. 덕분에 일도 잘 해결됐고 인질들도 구출했어요. ”

  “ 저기이, ”

  “ 스티븐 씨에게는 제가 말씀 드릴테니 신경쓰지 마세요! ”

  “ 어야. ”

 저기이……. 쓸데없이 덧없는 목소리를 뒤로 한 채 그대로 돌아서려던 레오는, 문득 생각난 게 있어 다시 그의 앞에 섰다. 그는 여전히 다쳐있었고, 아주 조금 지쳐 보였다. 레오가 주저하자 괜찮다는 듯 웃더니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한참 뒤 레오가 말했다.

  “ 오늘 여러모로 고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런 위험한 짓은 그만 두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 하하하, 알았어. 걱정 끼쳐서 미안. ”

  “ 누구라도 걱정할 거예요. ”

 옆에 계신 분은 저보다 더 걱정하셨을 거고요. 레오의 말에 그의 눈이 동그래진다. 꼭 타인에게 그런 말을 처음 들어본 사람 같은 반응이라 도리어 머쓱해진 건 레오였다. 말을 잘못 꺼냈나, 싶은 후회가 밀려와도 레오는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 선물도 좋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

  “ ……응, 명심할게. ”

 

 고마워. 레오라고 했나? 레오나르도 워치입니다.

곧 그의 얼굴에 싱그러운 웃음이 떠올랐다. 살풋 접히는 눈꼬리 사이로 눈동자가 사라지며 짧은 수평선을 그리자 레오는 문득 깨달았다. 눈 앞의 이는 참 신기한 존재다. 그는 방금까지 그 자신이 달래고 설득하다 얻어 맞기까지 한 테러리스트를 바라보던 것과 똑같은 눈으로 레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그냥 박애라 여기고 넘기기엔 무겁고 또 아득히 먼 곳까지 걸쳐져 있는 듯 했다. 레오는 그런 류의 본능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이해가 가기도 했다. 그런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바짝 붙어있는 울프우드 또한. 장난스레 씩 웃곤 레오가 말했다. 

  “ 남편분이 고생 많으시겠어요. ” 뭐, 뭐?

  “ 그래도 내 아니면 누가 얠 감당하겠나. ” 뭐라고?

  “ 그건 그렇네요. 저는 그만 가볼게요. 두 분도 조심히 들어가시고, 남은 여행 안전하게 보내시길 바라요! ”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라 돌아다니다 보면 생각보다 괜찮거든요. 볼 것도 많고……. 그 말을 끝으로 정말 돌아서려던 레오는 마지막의 마지막이라는 듯 다시 그에게 소리쳤다. 

  “ 아, 혹시 이름도 알려줄 수 있어요? 스티븐 씨에게 보고하려고요! ”

  “ 어어, 나?”

 그가 또다시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했다. 네, 선생님이요. 레오의 말에 꼭 허락이라도 받는 것처럼 울프우드를 올려다본 그는, 울프우드가 어깨를 으쓱이자 순식간에 밝아졌다. 내 이름은……. 숨을 한 번 고른 그가 마침내 꽃피듯 웃었다. 이 이름을 말할 수 있다는 기쁨에 가득찬 낯빛이다. 

  “ 밧슈 S. 울프우드야. 밧슈라고 전해주면 돼. ” 

 만나서 반가웠어, 레오나르도. 


 

🏛️


 

  “ 이상…… 입니다. ”

  “ 그래서 전시관 공사 비용은 전부 이쪽으로 넘어온 건가?”

  “ 그으…… 런 셈이 됐네요……. ”

 하아아아……. 스티븐은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뱉었다. 사무실 티비에서는 낮에 있었던 메트 습격 사건이 대서특필되어 어디나 그 얘기밖에 떠들지 않았는데, 그게 스티븐의 스트레스를 가중해주고 있는 듯 했다. 결국 스티븐은 티비를 껐다. 아무 잘못 없는 레오만 그 앞에서 눈치를 보다 조심스레 물었다. 

  “ 그런데 그 분들, 정체가 뭔가요? 라이브라에서 일하셨던 선배님……?”

 밧슈 씨의 아우라도 평범한 사람의 것은 아니었는데……. 흐려지는 레오의 말 끝에 스티븐이 질린 투로 덧붙인다. 

  “ 세계와 시간을 넘어서까지 이어지는 사랑의 주인공들, 이라고 해두지. ”

 솔직히 둘이서 그대로 붙어 살았음 좋겠네. 이제 그 정도의 태풍에 말려드는 건 사양이야. 

이왕이면 앞으로는 엮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본심이 그대로 느껴지는, 그답지 않게 투명한 어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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