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콜라스 D. 울프우드가 그 남자를 처음 본 건, 고용된 식당의 텔레비전 화면 속이었다.
테이블을 정리하던 때였다. "앗! 있습니다! 역시 저 붉은 코트는!”이라는 리포터의 외침이 울려 퍼졌고 무심코 고개를 돌린 그곳에는 이미 먼지가 자욱하게 쌓인 모습이 나온 걸로 봐서 무언가 소동이 벌어진 것 같다고 한다. '붉은 코트'라는 단어가 왠지 모르게 걸렸고 어수선한 영상에 눈을 돌려 찾아보니.
“ 밧슈 더 스탬피드!! ”
카메라가 한 인물을 클로즈업했다.
유연한 몸을 딱 맞게 덮고 허리에서 아래로 흩날리는 진홍색 코트. 위를 향해 솟은 검은 머리에 오렌지색 선글라스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름다운 푸른 눈동자.
춤추는 듯한 움직임으로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고 몸을 돌려 잔해더미 위를 달리는 모습을, 니콜라스는 중단한 작업도 잊은 채 계속 쫓았다.
“ 오오, 또 도망치는 걸까요~ 하지만 상대는 가미에라 패밀리와 브래드포드 형제의 연합팀! 이쯤 되면 밧슈 더 스탬피드도 끝인가~! "
NLBC의 생방송이었다. 파고들 기세로 바라보는 모습을 점주와 그의 딸 마리가 웃었다.
" 뭐야 니코, 밧슈의 팬이야?"
" 어? 아저씨도 이 녀석을 알아요?"
화면 속 인물도 궁금하지만, 가게 주인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이 남자를 보자마자 심장이 매우 시끄럽게 뛰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야 할 것 같은 조급한 마음이 가슴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걸. "
" 아빠, 니코는 기억이 없어. 모르는 게 당연해. "
화면 속에서는 어느새 밧슈가 도망쳤다고 리포터가 외치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 밧슈 더 스탬피드. 휴머노이드 타이푼이라 불리는 초S급 지명수배자다. 악당 같은 얼굴은 아닌데 말이야. 어떻게 저런 사람이 대사건의 주모자라는 건지…… "
" 휴머노이드…… 타이푼…… "
" 어머나, 저 도시 거의 괴멸 직전이잖아. 여긴 안 왔으면 좋겠다…… "
" 가는 곳마다 저렇게 부수더라. 본인은 도망치는 속도가 빨라서 한 번도 잡힌 적이 없고. "
넋이 나간 니콜라스가 치우던 식기를 마리가 재빨리 치우고 텔레비전 채널을 재빨리 바꾼다.
" 아, 미안. "
" 괜찮아. 나중에 같이 쇼핑하러 가자. "
" 난 꽤 좋아하는데. 저 녀석 하나를 상대로 나쁜 놈들이 짖어대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유쾌한데. "
"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오늘 밤 요리의 재료 손질이라도 해. "
잠시 쉬게 해달라고 주장하는 아버지와 딸의 공방전이 계속되는 동안, 니콜라스의 머릿속은 아까 본 남자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밧슈.
밧슈 더 스탬피드, 휴머노이드 타이푼.
그 이름을 마음속으로 되풀이하면 가슴을 뒤집고 싶은 초조함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바람에 휘날리던 코트의 잔상이 눈 앞에서 어른거린다.
어디선가 만났던가?
중요한 거였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후, 한동안 니콜라스는 밧슈에 대해 조사했다.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화제를 던지면 나머지는 알아서 말을 해주는 덕에 정보는 금방 모았다.
가게 주인의 말처럼 나쁜 소문도, 좋은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러던 중 "니콜라스, 당신이 집착하는 밧슈가 그 도시에 나타났대", "팬이라면 밧슈를 직접 보고 싶지~"라며 장난을 치는 손님도 나타났다. 그런 사람들은 즉시 마리가 내쫓을 때도 있지만, 그렇게 신경 쓰인다면 직접 만나러 가면 된다고, 니콜라스도 생각하게 됐다.
NLBC 방송을 꼼꼼히 체크하기 시작한 니콜라스에게 "사랑에 빠진 거 아니냐"고 놀리던 가게 주인이 딸에게 따끔한 눈총을 받기도 했다.
" 사랑……?"
잘 모르겠다. 기억을 잃기 전의 나라면 알 수 있을까? 이 감정은 대체 뭘까?
밧슈가 신경 쓰이면서도 니콜라스의 하루는 이전과 다름없이 평온하게 지나갔다. 기억이 없어도 좋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아무런 불편함도 없다. 가게에서 일하는 것도 잘 맞아서 니콜라스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런 나날은 갑작스럽게 끝이 났다.
이웃 마을에 밧슈 더 스탬피드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려온 바로 그 순간에.
*
" 으~~~~! 너희 정말 끈질기구나!!! "
물 흐르듯 쏟아지는 총알을 피하면서 밧슈는 큰 길을 온 힘을 다해 달렸다. 이 도시에는 시장에 들른 것뿐인데 하필이면 며칠 전에 싸운 상대의 부하와 마주치고 만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않게 하기 위해 일부러 소란을 피우며 도망친다. 실내로 재빨리 피신할 정도로 위기 의식이 강한 도시라 다행이지만, 그 사이 상대는 동료를 모아 밧슈를 몰아내기 위한 포위망을 치는 것 같았다.
" 끝까지 쫓아가마~~ 네놈의 그 예쁜 목을 얻을 때까지! "
" 히익. "
큰 칼을 지닌 덩치 큰 남자는 가미에라 패밀리 중에서도 위험한 인물로, 엽기적인 사냥을 하는 걸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밧슈를 집요하게 노려온다. 이 남자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면 밧슈는 등골이 오싹해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게다가 후방에서 브래드포드 형제가 사격 거리가 긴 라이플로 교묘하게 탈출 경로를 좁혀 왔다.
아차 싶을 때 이미 늦었고, 막다른 골목길로 유도당했다. 이 일대의 건물은 낮은 데가 없어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탈출이 매우 어렵다.
거구의 그림자가 낄낄거리며 다가왔다.
" 안심해, 이런 데서는 안 자를 거니까…… 둘이서만 즐기자고. "
" 사, 사양할게요……! "
밧슈는 뒤돌아보며 자신의 총을 들었지만, 그 움직임을 읽은 듯이 손에서 튕겨서 떨어뜨리고 말았다. 거구의 뒤에는 장발 남자가 서 있었고, 방금 쏜 총구를 또 밧슈에게 겨눴다. 쉴 틈도 없이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칼 끝이 날아왔다. 간발의 차이로 피했지만, 그 틈을 타서 목을 단단히 조여졌다.
" 네 놈이 총을 지니면 상대가 안 된다는 건 잘 안다. 쉽게 쏘게 둘 거란 생각은 버려라. "
" 큭…… 윽, 하. "
거구는 한 손으로 밧슈의 목을 잡고 들어올렸다. 다리가 뜨며 매달린 상태라 목이 더 조여진다.
어떻게든 손을 떼려고 했지만, 밧슈의 세 배는 될 정도로 큰 손은 꿈쩍도 안 했다.
아, 안 돼. 의식이……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휘두르며 쓰러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지만, 의식이 희미하게 사라져 간다. 위험하다. 깨어났을 때 이 덩치 큰 남자와 둘이서만 있어 괴롭힘당하는 건 정말 사양하고 싶다. 할 거면 차라리 단숨에 해치워주는 편이 낫다.
얼굴을 가까이 대고 황홀에 빠져 있는 남자에게 떨고 있는데, 갑자기 앞길이 시끄러워졌다. 난투극이라도 시작한 걸까?
거구의 남자가 " 뭐야?" 하고 돌아섰을 때는 총격을 담당한 장발 남자는 사라져 있었고, 정신이 팔린 건지 밧슈를 잡은 손이 조금 느슨해졌다. 아찔했다. 숨을 크게 들이쉬어 뇌에 산소를 공급했다.
"뭐냐, 넌!? 동료냐⁉︎" 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나 싶더니 '쿵', '쿵'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이상 사태를 느꼈는지 거구의 남자는 밧슈를 던지고 땅이 울리듯 발을 구르며 앞길로 향했다.
" 어이, 무슨 일…… "
탕! 발포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벽에 몸을 세게 부딪혀 바닥에 쓰러진 밧슈가 보니 한쪽 무릎을 꿇은 거구의 남자가 있었다. 아무래도 다리에 총을 맞은 모양이다.
" 뭐…… 뭐냐, 넌…… "
" 너희에게는 딱히 원한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데, 그 남자에게 볼일이 있어. "
……어?
밧슈는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여러 곳이 아팠지만, 그럴 때가 아니었다.
이 목소리.
이 독특한 억양의 말투.
설마……
" 참아. 네 친구들은 모두 저쪽에서 굴러다니고 있지만. "
" 뭐야⁉︎ "
" 빨리 가는 편이 좋을걸? 안 그럼 댁도 여기서 굴러다니게 될 테지만. "
총구를 거구의 머리에 들이대고, 찰칵하고 소리를 냈다.
그 모습, 그 얼굴. 틀림없이 함께 싸운 기억 속 그 남자였다.
" 빌어먹을……! "
욕설을 내뱉은 거구의 남자가 벌벌 떨며 갑자기 도망쳤다. 멀어지는 발소리를 무심히 바라보던 남자는 들고 있던 총을 던져 버린다.
바닥에 앉아 있는 밧슈를 발견하고는 시선을 고정한 채 성큼성큼 다가온다.
" 어, 저기, 뭐야…… "
뒤는 막다른 골목이다. 도망칠 곳은 없다.
왜, 왜 여기에 이 녀석이?
머릿속이 온통 그 생각만이 맴돈다.
“ 밧슈 더 스탬피드. ”
상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멈칫하고 굳어졌다.
그건 확실히 자신의 이름이다.
자신의 이름이지만.
한쪽 무릎을 꿇고 같은 눈높이까지 몸을 굽힌 남자…… 울프우드가 손을 내밀며 친근하게 웃는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남자는 전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내뱉었다.
" 니콜라스 D. 울프우드야. 네게 반했다! 나와 결혼해 줘! "
하…………
뭐~~~~~~~~~?????????
너무 놀라서 말도 안 나오는 밧슈의 손을 아랑곳하지 않고 잡아 일어서게 한 남자는 코트에 묻은 먼지를 털며 얼굴을 가까이 대고 빤히 바라보았다.
" 가까이서 보니 정말 미인이네. 눈 밑의 점이 너무 요염해. "
" 어…… 넌 누구야……?"
" 그러니까 니콜라스라고 했잖아. "
그게 아니야.
왜냐하면 밧슈가 아는 울프우드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들은 적도 없다.
반했다고? 무슨 농담이야?
" 잘 부탁해, 밧슈. 대답은 천천히 해줘. "
그렇게 말하며 밧슈의 손에 가볍게 키스를 한다.
어………………????
전혀 상황을 따라갈 수 없었다. 목이 조여졌을 때보다 의식이 희미해진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머리가 거부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너.
지난 몇 년 동안 겨우 깊숙이 가라앉힌 감정을 파헤칠 것 같아서, 밧슈는 그것을 붙잡기 위해 애썼다.
무척 혼란스럽다.
울프우드에게 이끌려 그가 사는 마을까지 갈 정도로.
" 나 어렸을 때 고아원에서 살았는데 열 살이 넘은 후부터는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
눈앞에 생크림을 매우 많이 짠 커다란 파르페가 나왔다. 이 가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라고 할 만한 그 화려함에 잠시 넋을 잃은 밧슈는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 무슨 큰 사고를 당했는데, 어느 날 정신차리고 보니 병원에 입원해 커다란 기구를 달고 있더라고. 몸은 멀쩡했는데 머리가 너무 아파 이름만 겨우 말했어. "
기다란 숟가락을 받았다. 밧슈가 주문한 건 아니지만, 먹어도 된다는 뜻이겠지. 망설임 없이 숟가락 끝을 크림 속에 집어넣고 작게 조각난 과일과 젤리를 떴다. 한 입 베어 물면 신맛과 단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금세 먹어치웠다.
" 그래서 재활을 하는데 친절하게도 일을 소개해 준다는 사람이 와서 이 동네로 데려왔어. 나 자신에 대해서는 기억 못 하지만, 생활에 필요한 일은 거의 다 하거든. 몸이 기억해서. "
세 겹으로 나뉜 컵 안에는 바삭한 플레이크와 부드러운 무스로 식감의 변화가 재미있다. 완전히 매료되어 벌써 반 정도 먹었다. 울프우드는 그런 밧슈를 턱을 괴고 보며 커피를 마시고는 말을 이어갔다.
" 중계방송에서 처음 너를 봤을 때부터 계속 신경쓰였어. 마침 근처에 나타났고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지.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지는 몰라도 직접 보자마자 알았어. 이게 바로 사랑이란 걸. "
" 웁…… 콜록, 콜록. "
너무 많이 먹은 탓에 목이 막힐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런, 괜찮아? 천천히 먹어"라며 등을 두드리고는 물이 담긴 잔을 내밀었다.
아니, 너 때문이야, 이 바보야.
받은 물을 꿀꺽하고 마셔 목에 걸린 걸 넘겼다. 눈앞의 남자는 시종일관 미소를 짓고 있어 뭐라도 말해줄까 싶었지만, 그 악의가 없는 모습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정말 누구야, 이 사람. 적어도 예전에 자신과 함께 여행한 남자는 아니다.
" 잘 모르겠지만, 너를 붙잡아두면 좋겠다 싶었어…… 신기하네, 전에 만난 적 있나?"
" ……아까 그 전투는 어디서 배운 거야?"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궁금했던 한 가지를 물었다.
그 후 둘이서 골목을 빠져나와, 대로변에 세 명의 남자가 쓰러진 걸 봤다. 방심한 틈을 탄 걸지도 모르지만, 무방비한 상태에서도 그런 짓을 해내다니. 게다가 차가운 표정으로 거구의 남자에게 총구를 겨누던 모습은 그야말로 테러 목사 그 자체라 오싹했다. 저런 이상한 말을 하기 전까지는 완전히 기억이 돌아온 줄 알았을 정도였다.
" 아니, 난 맨손으로 싸운 적 없는데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더라. 총도 만져보니 쉽게 쐈고. 난 대체 뭘 한 걸까? 나쁜 짓을 한 건 아닌지 걱정이야. "
나쁜 짓 따위는 안 해, 너는.
문득 입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서 급히 크림 한 덩어리를 입안에 밀어 넣었다. 농후한 단맛이 가슴을 태운다.
" 그래도 늦지 않아 다행이야. 내 직감은 맞았어. "
" ……덕분에 살았어, 고마워. "
실제로 울프우드에게 도움을 받기만 했다. 자신은 그를 위해 아무것도 못했는데.
" 멋있었지?결혼해 줘. "
생글하고 어린아이 같은 밝은 미소를 가까이 들이댔다.
" 그건 다른 이야기야. "
" 엄격해~. "
딱딱하게 말해도 그조차 기쁜 듯이 웃는 모습에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진다.
잠깐, 잠깐, 동요하지 마.
여기서 실패하면 지금까지의 고생이 물거품이 돼.
" 뭔가 착각하나 본데 너 기억상실증이라며. 사랑에 빠진 걸 어떻게 알아?"
그렇다.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밧슈의 모습을 보고 기억이 돌아오는 걸지도 모른다. 그 틈새를 특별한 감정으로 인식하는 걸 수도 있다.
" 그건 아니야. "
울프우드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런 점은 그 목사를 떠올리게 해서 저도 모르게 짙은 갈색의 눈동자를 쳐다보게 된다.
" 지면에 쓰러져 있는 너를 보고 정말로 달려들 뻔했어. 최대한의 이성을 발휘해서 참았지만. "
" 풉! "
방금 전까지 마시던 유리잔의 물을 뿜을 뻔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 녀석.
기억이 없어진 것뿐만 아니라 어딘가 나사라도 빠졌나?
" 그래서 이건 사랑에 빠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 착각할 리가 없지. "
" 그…… 그래…… "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무턱대고 파고들면 뭐가 나올지 모른다.
" 혹시 급한 용무라도 있어?"
또다. 밧슈를 보는 눈빛이 어린아이의 그것이다.
함께 여행할 때는 못 본 그런 표정은 밧슈의 마음을 쉽게 꿰뚫고, 그의 앞에서 도망치려는 자신을 책망했다.
" 없으면 우리 집에 와…… 아무것도 안 할 테니, 대답 생각해 봐. "
" ………… "
안 돼.
안 돼, 밧슈 더 스탬피드.
넌 더 이상 이 남자의 인생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자신과 거기에 얽힌 그의 끔찍한 과거가, 새롭게 시작한 그의 인생에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도록.
평온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 크림 묻었어. ”
눈꼬리를 부드럽고 가늘게 뜨며, 긴 손가락을 밧슈의 뺨으로 뻗어 입가를 닦아준다. 손끝에 묻은 하얀 크림을 핥더니 '달다'라며 얼굴을 찡그렸다.
결국 그를 거부하기 위한 말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밧슈는 일주일이라는 답변 기한을 제시했다.
"일주일이 지나도 결혼에 동의할 의지가 생기지 않으면 포기해"라는, 밧슈에게는 백보 양보한 협상 조건이었다.
파르페를 다 먹고 도망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쫓아올 가능성이 더 높다. 울프우드는 그런 사람이고, 왜인지 자신을 찾는 데 능숙하다. 쫓기느니 차라리 자신을 잊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울프우드는 그 조건을 수락했다. 그의 집에 머무는 건 거절한 밧슈에게 불만인 듯했다. 덮칠 뻔했다는 녀석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되묻자 "그도 그렇지. 확실히 안 덮칠 자신은 없다"고 소름끼치는 말을 했다. 정말이지 엄청난 남자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부터 울프우드는 밧슈가 묵고 있는 숙소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갓 구운 빵을 들고 출근 전에 갖다 준 것이다.
고맙게 받으며 "나중에 또 봐!"라며 떠나는 뒷모습을 배웅한다. 특별히 할 일이 없는 밧슈는 산책하거나 그의 가게에서 식사를 하는 등 한가롭게 시간을 보냈다. 결혼 제의 외에는 울프우드가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좋은 기회였다.
그의 고용주는 갑자기 나타난 붉은 코트를 입은 남자를 보고 당황했지만, 울프우드에게 이야기를 들은 모양인지 "사랑의 병이라면 어쩔 수 없지"라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딸이라는 귀여운 여성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았지만…… 뭐야, 내가 아니어도 근처에 있잖아라며 오히려 안심한 밧슈였다. 빨리 알아차리면 좋을 텐데.
울프우드의 근무 시간이 끝나면 근처 술집에 들르기도 했다. 소소한 이야기로 그와 함께 여행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시간. 그때나 지금이나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도 못하는 건 전혀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걸로 다행이었다.
다만 헤어질 때 울프우드는 "결혼하고 싶어졌어?"라고 묻는다. “아직은”이라고 대답하자 “그래”라며 고개를 떨구는 모습에 뭐라 못 하고 저도 모르게 정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곤란했다. 빨리 일주일이 지나가길 바라며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면 다시 찾아올 그의 천진난만한 미소에 가슴이 조여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밧슈는 이 도시에 오자마자 리비오에게 연락했다. 목숨을 건진 울프우드를 뒤에서 지켜보고, 울프우드의 이후의 삶도 지원한 건 바로 그였다. 이틀 후 찾아온 리비오는 청혼을 받았다고 말하자 눈을 반짝이며 "축하합니다……!"라고 말했다. 너무 성급하다.
"아직 답장도 안 했고, 결혼할 생각도 없다"라고 말하는 밧슈에게 "왜요?"라고 진지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왜요”가 아니지. 자신과 결혼하면 울프우드의 인생이 엉망이 될 뿐이라고 말했더니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 밧슈 씨는 어떠세요?"
매우 직설적으로 물었다. 리비오인데도 불구하고 아픈 곳을 찌른다.
" 결혼…… 굳이 안 해도 돼. 친구로서 만나러 올 수 있어. "
" 울프우드 씨를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그건 그 사람이 원한다면 별 문제없을 거예요. 오히려 기억이 없어져도 당신을 바랐어요…… 제대로 진심어린 답을 해 주세요. "
" 거짓말이 아니야.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해, 나는. "
리비오는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밧슈는 자신이 내뱉은 말이 계속 혀끝에서 맴돌았다.
타이르듯, 몇 번이고.
*
울프우드의 가게에 점심을 먹으러 갔더니, 지금은 장을 보러 나가 부재중이라고 했다. 오늘의 추천 메뉴를 주문하고 늘 앉는 벽 쪽 자리를 잡았다. 조금 늦은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가게에는 손님이 적어 한산했다. 곧이어 나온 추천 점심 메뉴는 필라프와 수프. 고소한 냄새가 입맛을 돋운다.
곧바로 먹기 시작한 밧슈는 뒤에서 사람의 기척이 나 힐끗 돌아보았다. 조금 전에 음식을 가져다준 이 가게의 마스코트 종업원이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서 있다.
왔구나.
언젠가 이야기하러 올 줄 알았다. 이 가게를 방문할 때마다 그녀의 시선이 아프게 꽂혔기 때문이다.
" 옆자리, 앉을래?"
빈 자리를 권하자 "괜찮아"라며 얼굴을 돌린다.
꽤 당찬 소녀 같지만, 불안하게 손을 만지는 모습에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붉고 예쁜 모양을 한 입술을 꽉 다물었다.
아~ 이렇게 귀여운 아이인데, 그 녀석도 참.
울프우드에게 정상적인 판단력이 있다면 그녀에게 이끌릴 것이다. 즉, 조금 남은 기억에 집착해 자신에게 집착하는 상태다. 분명 만나기에는 너무 이른 거다.
" ……왜 매일 여기 오는 거야?"
중얼거린 말은 밧슈에게 던지는 것보다는 가슴 속 응어리를 토해내는 것처럼 들렸지만, 밧슈는 열심히 필라프를 먹으며 "맛있으니까"라고 했다. 이건 어떻게 대답해도 그녀를 부추기는 것밖에 안 됐다. 밧슈에게 덤빌 수 있는 구실이 되기 때문이다.
" 뭐……! 왜 대답도 안 하면서 니코가 신경 쓰게 만드는 건데!?"
주방에서 이쪽을 살피던 점주가 슬쩍 물러났다. 자상한 아버지이자, 판단이 빠른 현명한 고용주다.
" 기억이 없다고 장난치는 거지⁉︎ 당신 같은 사람이 니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리가 없어……! "
그녀는 분노에 떨고 있었다. 밧슈가 그런 의도가 아니더라도 그렇게 비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그녀는 기억이 없는 울프우드에게 친절하게 대했다. 그런데 갑자기, 하필이면 휴머노이드 타이푼에게 프러포즈를 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를 받아들이라는 건 무리였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더욱더.
" 미안…… 약속 기간이 끝나면 바로 여길 떠날 거야. "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물주전자를 움켜쥐고는 그대로 세차게 물을 뿌렸다.
고요한 가게 안에는 흥분한 그녀의 숨소리만 들렸다. 머리카락 끝과 턱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 나갈 생각이면 지금 당장 나가! 네가 있는 것만으로도 이 도시에 민폐야! "
분노로 뺨을 붉게 물들인 그녀의 격분은 가라앉지 않고 더욱 격화될 기미가 보였다. 달각하고 숟가락을 내려놓고 조용히 자리를 떴다. 음식을 남기는 건 미안하지만, 이대로 계속 먹을 만큼 뻔뻔하지 못했다.
" 아, 계산을…… "
지갑을 찾으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자, 그런 행동도 역린을 건드리게 된 건지 이번에는 손에 들고 있던 물주전자를 던졌다.
분노 게이지는 점점 올라만 갔고,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물건을 마구 집었다.
" 빨리 나가! 다시는 오지 말고, 니코에게도 접근하지 마! 너 따위, 너 따위……! "
" 아, 자, 잠깐, 아야~~~ "
밧슈에게 아무거나 마구 던지면서 외치는 목소리에는 눈물이 섞여 있었다. 식기와 조미료 병, 그 외에도 여러 물건을 최대한 피하면서 밧슈는 문 쪽으로 비틀대며 향했다. 이대로 도망쳐서 여길 떠날 명분으로 삼아도 될 것이다…… 그런 계산을 하며 문을 열었다.
그리고……
" ……무슨 일이야?"
정말 타이밍이 나쁜 사람이다. 마침 돌아온 울프우드가 서 있었다. 밧슈와 가게 안의 참상에 눈을 크게 떴다.
이런……
" 니코……! "
눈치가 빠른 그라면 어떤 상황인지 쉽게 파악할 것이다. 울프우드는 조용히 눈을 가늘게 뜨고 밧슈의 팔을 끌어당겨, 들고 있던 짐을 근처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새파랗게 질린 그녀는 앞치마를 꽉 움켜쥐고 "나, 나 아니야, 이런……"이라며 사라질 것 같은 목소리로 되풀이했다.
" 아저씨, 잠깐 나가도 돼? 금방 돌아올게. 청소도 내가 할 테니까. "
울프우드가 안쪽을 향해 말을 걸자, 손짓으로 대답하는 게 보였다. 다음에는 서 있는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 마리, 미안해. 나중에 제대로 이야기할게. "
그렇게 말하고는 밧슈의 팔을 끌어당겨 가게 밖으로 나간다. 뒤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따라와도 울프우드는 돌아보지 않았다.
끌려간 곳은 가게 근처에 있는 그의 아파트. 방에 들어갈 때까지 울프우드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수건 한 장을 건네주며 샤워하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제법 넓은 방이었지만,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있었다. 늘 아무것도 지참 안 하고 여행하는 그답다고, 밧슈는 생각했다.
물에 젖었을 뿐 아니라 소스와 향신료 가루가 뿌려진 코트를 벗었다. 머리에도 잔뜩 뒤집어썼기에 샤워를 잘 사용했다.
코트와 속옷은 빨아야 할 것 같았다. 더불어 빨고 나서야 갈아입을 옷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망설였지만, 어쩔 수 없이 수건을 걸치고 욕실에서 나왔다.
" 니콜라스, 옷 다 빨았는데. "
" 그래, 내 옷 입어라…… "
갈아입을 옷으로 자신의 셔츠를 준비한 모양이다. 옷을 내밀자 몇 초 동안 울프우드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의 시선은 밧슈의 몸에 있는 무수한 흉터와 볼트, 박힌 금속과 왼팔의 의수에 쏟아졌다. 기억을 잃었다면 놀랄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충격이 더 큰 걸지도 모른다.
" 그건…… "
" 응? 왜 그런 표정을 지어. 나는 지명수배자야. "
쓴웃음을 지으며 수건을 치우고 대신 그의 셔츠를 걸쳤다. 그리고…… 울프우드의 변화에 밧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떨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 아…… 윽…… "
" 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작게 신음하는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고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밧슈는 황급히 달려가 엎드린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 머리…… 아파…… 윽…… "
무언가가 발작하듯 숨을 헐떡이며 신음하는 울프우드를 그저 볼 수밖에 없었고, 밧슈는 서서히 밀려오는 불안함에 매우 동요했다.
몸은 회복됐다지만, 이전의 그는 보통 사람이라면 견딜 수 없을 만큼의 대미지를 입었다. 무언가 문제가 생길 법도 했다.
어떻게 해야……
조급한 마음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던 밧슈의 뺨에, 그때.
깃털 한 장이 나타났다.
마치 그 자체에 의지가 있는 것처럼 공중을 천천히 헤엄치더니 웅크리고 있던 울프우드에게 착지했다. “아……”하고 말을 함과 동시에 뺨에 착 달라붙었다.
" ……깃털?"
울프우드에게 닿자마자 빛을 내기 시작한 시작한 그것은 희미하게 부드러운 빛으로 그를 감쌌다. 하지만 정말 한순간이었다. 환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날개는 울프우드에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위험하다.
이건…… 매우 위험하다.
짙은 색을 띤 두 눈동자가 이쪽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 ……너, 역시…… 함께…… 젠장, 대체 뭐가 뭔지. "
단숨에 기억이 돌아와서 처리가 뒤처지는 걸지도 모른다. 보아하니 통증은 나은 것 같다. 다행이다.
" 밧슈, 설명해 봐. "
" ……설명이고 뭐고, 네가 기억하는 것만이 사실이야. "
한숨을 쉬고 그의 곁을 떠난다.
일주일은 너무 긴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를 볼 수 있다는 게 기뻐서 욕심을 부린 대가다.
" 떠오르지 않는 건 떠올리지 않는 게 좋다는 거지. 과거에 갇혀 있을 필요는 없어…… 너는 새로운 인생을 손에 넣었으니까. "
" 잠깐……! "
일어선 울프우드는 비틀거리며 밧슈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은 자신보다 크고 굵었다.
그 큰 중화기를 다뤘다. 그 손에 붙잡혀서 난폭하게 끌려가는 것도, 가끔씩 머리를 때리는 것도, 소중한 것을 만지듯 다루는 것도 모두 좋았다.
가슴 속에 제멋대로인 마음이 울부짖는다.
사실은 함께 있고 싶다고, 그가 살아있다고 들었을 때부터 계속 울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 네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뻐. "
아주 잠시.
어깨를 끌어당겨 입술이 닿을 뿐인 키스를 했다.
" 옷은 나중에 갖다 줄게. 오늘 밤에는 여길 떠날 거야. "
대답은 듣지 않고 그의 집을 떠났다.
더 이상은 견딜 자신이 없었다.
*
" 후우~~~~~~ "
숙소를 나와 짐을 짊어지고 시내로 나온 밧슈는, 여행에 필요한 물과 식량을 보충하고 길에서 떨어진 광장에 앉았다.
일단 인근 도시에서 샌드 스팀이 오기를 기다리기로 하고 지도를 꺼내 갈 곳을 정했다.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은 없지만, 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는 편이 좋다. 울프우드에게 쫓기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나를 위해서다. 언제까지나 감상에 젖어 있는 건 안 좋다.
나머지는 울프우드가 일하는 곳으로 코트를 가지러 가면 된다. 이 셔츠는 자신의 사이즈보다 큰데, 입고 있으면 자꾸 생각이 나서 최대한 빨리 벗고 싶었다. 도무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저녁 시간이 지나고 해가 기울어질 무렵, 이제 가야겠다 싶어 일어섰다. 그때였다.
낮은 햇빛을 받아 여러 개의 긴 그림자가 다가왔다. 역광을 손으로 가리니 어디서 본 듯한 얼굴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 어이, 휴머노이드 타이푼. 그렇게 있으니 더 남자다워 보이는데. "
" 트레이드 마크인 코트는 어떻게 된 거냐? 이미 숨기에는 늦었다. "
" 그, 그게, 빨래해서…… "
요즘 자주 만나는 이들이다. 뭐시기 패밀리와 어딘가의 형제들.
" 그때 그 남자는 어쩌고? 동료 아니야? "
" 어? 아니~~~~ 그냥 지나가던 분이라 잘 모르겠는데. "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하자 “장난하냐‼︎”며 화를 냈다. “장난이었어요,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할 틈도 없이, 발밑에 연달아 총알이 쏘아졌다. 그 짧은 성질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 정말이지, 이쪽은 지금 감상을 견디고 있는데…… "
밧슈가 짐을 들고 뛰쳐나가려는 순간, 익숙한 발소리에 발걸음을 멈춘다.
어, 설마……
가로막고 있는 자들 너머로 지겹도록 본 방송 차량과 완장을 찬 몇 명의 그림자가 보였다.
" 자, 오늘도 스릴 넘치는 전개를 자세히 전해드리는 NLBC! 오오, 이거 밧슈 더 스탬피드 본인이지 않습니까! 평소의 붉은 코트가 보이지 않네요! "
" 어째서……?"
" 네 놈이 당하는 걸 기대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불렀다. "
어차피 뒤에서 내기의 대상으로 삼고 있겠지만, 굳이 이런 데서 할 것까지야.
아까 가게에서 들은 말이 떠오른다. 그 소녀에게 있어서 자신은 역병신일 뿐. 더는 민폐를 끼칠 수 없다.
“ 어쩔 수 없지…… ”
“ 밧슈가 총을 들었다! 항상 처음부터 도망치는데 오늘은 기세가 다르군요! "
" 옷차림도 그렇고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요?"
" 옷을 좀 바꿔본 거 같은데 혹시 차였나요?"
"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오늘은 좀 더 휘몰아치겠군요. "
"시끄럽거든!?!?"
자꾸만 상처를 후벼 파면 매우 아프다. 요즘 내 진짜 적은 그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어이, 잡담은 끝이다. 이쪽도 온 힘으로 갈 테니…… 각오해라. "
줄지어 선 모두가 총을 겨눴다. 보아하니 전보다 인원이 더 많은 것 같다.
" 오늘은 놀아줄 수 없어. 즐겁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화내지 마. "
밧슈가 땅을 박차고 뛰어가자, 이를 신호로 일제히 총을 쐈다.
자세를 잡고, 조준하고…… 대개의 상대는 밧슈의 실력을 아는 탓에 나름대로의 대책을 세우고 도전해 온다. 하지만 그것들은 항상 효과가 없다. 정밀하게 콘트롤한 밧슈의 실력은 그들의 예상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
저녁 영업이 시작되기 전에 바닥을 닦고 흩어진 걸 정리한 울프우드는 대걸레에 기대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부터 왠지 모르게 담배를 매우 피우고 싶었다. 지금까지는 전혀 그런 생각이 안 들었는데, 밧슈의 깃털을 타고 기억이 흘러 들어온 후부터 계속 이 상태다.
아직 머릿속은 정리가 안 됐지만, 대략적인 건 떠올랐다. 좋아하는 담배 브랜드, 짊어지던 십자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은 붉은색. 녀석은 오늘 밤이면 떠날 거라고 했다. 붙잡고 싶지만, 마지막 기억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무언가 중요한 걸…… 그 남자의 깊은 곳에 박힌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걸 찾으려고 하면 머리가 욱신거려서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도 분명 중요한 기억일 것이다. 열어서는 안 될 것 같으면서도 열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준비를 마치니 가게 주인이 텔레비전을 켰다. 피곤한 얼굴인 건 방에 틀어박힌 딸이 걱정되기 때문일 텐데, 울프우드에게는 불평 한 마디 하지 않는 착한 사람이다.
가게에 돌아오자마자 마리와 이야기를 나눴다. 아직 자신의 행동에 당황한 것 같았지만, 신경 쓰지 말라고 하자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울프우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소중한 것이 뭔지 안다. 기억이 돌아와서 그게 더 짙고 확실해진 것뿐이다. 기분을 풀어주기 위한 좋은 말은 일절 해줄 수 없다. 그저, 신세 진 감사를 말하는 것 외에는.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것은 익숙한 NLBC였다. 멍하니 보고 있던 주인이 갑자기 당황해하며 화면에 달라붙어 식은 땀을 흘렸다.
" 앗!! 역시 밧슈 더 스탬피드! 저 맹공격을 전부 피하다니! ”
뭐?
그 이름에 울프우드도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아까 막 헤어졌는데……!
설마하고 어리둥절해하니 가게 주인이 "여, 여기, 거기야! 저쪽 외곽에 있는 광장……"이라며 얼굴 빛을 잃었다. 가게 주인의 큰 몸을 피해 화면을 보니 어디서 본 듯한 얼굴들이 모여 있었다. 보복하러 온 건가.
수많은 적에 맞서는 건 검은 머리의 남자 단 한 명. 평소 입던 붉은 코트가 아닌 자신이 빌려준 셔츠를 입은 채.
" ……아저씨, 갑자기 정말 미안한데. "
이 도시에서 살던 몇 년은 아마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평온했다. 이 생활이 계속될 줄 알았다. 그 붉은색과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 알아, 니콜라스. 쓸쓸하지만. "
가게 주인은 그에게 "어서 가. 반했으면 끝까지 함께 해야지."라며 어깨를 두드렸다.
" 이런 걸로 이별 선물이라 하기 그렇지만…… "
앞치마 주머니에서 무언가 상자를 꺼내서는 둥그런 손으로 울프우드에게 떠넘겼다.
담배였다.
" 이거밖에 없거든. "
" ……이거 좋아하는 거야. 고마워, 아저씨. "
조용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때였다.
‘쾅!’하고 엄청난 기세로 입구 문이 열리면서 큰 체격의 남자가 나타났다. 특징적인 모자와 얼굴에 새겨진 커다란 문신.
“ 리비오. ”
" 울프우드 씨! 다행이에요…… 어, 기억 떠오르셨나요!?"
" 그럭저럭. "
아직 완전하지는 않다고 하자 눈가를 촉촉하게 적시며 다가온다. 무섭다.
" 정말 다행이다……! 그 사람은 고집이 세서 어,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
" 잠깐, 잠깐, 미안한데 지금 그런 이야기할 때가 아니야. 나중에 하자. "
그 말에 울음을 그친 리비오는 등에 짊어지고 있던 걸 내려놨다. 그 중량감, 경건한 형상. 이걸 다시 들게 될 줄이야.
" 늦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가세요. "
활짝 웃는 동생은 몇 년 사이에 많이 성장한 것 같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룻밤 사이에 다 못 들을 만큼 많은 이야기가 쌓여 있겠지. 시간은 앞으로 얼마든지 있다. 소중한 것을 잘 붙잡고 나면.
*
미처 피하지 못한 총알이 어깨를 스친다. 찢어진 셔츠에 정신이 팔려 뒤에서 뻗은 팔에 목이 조여졌다. 굵은 팔에 가볍게 들어올려지는 느낌, 이 녀석은 분명 거구다.
" ……앗! "
" 흥, 총도 좋지만 난 역시 내 손으로 숨통을 끊는 게 더 좋거든. "
날카롭게 빛나는 칼을 일부러 밧슈의 얼굴 앞에 들이대며 과시한다. 투박하고 장식이 달린, 악취미한 물건이다.
" 주문 제작이다, 멋지지? 너 총은 잘 쏘면서 발놀림은 엉망이로군. 한껏 멋대로 하다니 역시 스탬피드 님이라니까. 귀찮으니 다리부터 먼저 잘라야겠군. "
" 밧슈 더 스탬피드가 잡혔습니다! 핀치다!! 이미 가미에라 진영은 밧슈로 의해 절반 이상이 전투 불능이 됐지만, 공략하기 어려운 거구 그로테스크 바이론이 남아 있습니다! 자,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
" 물러서, 바이론! 네가 있으면 못 쏜다! "
긴 머리의 남자가 히스테릭하게 외친다. 즉석 연합군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지, 전투 중에도 서로의 연계 실수로 빈틈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싸움은 계속되는 것 같다.
" 잠깐만. 지난번에는 아까웠어…… 모처럼 이 예쁜 얼굴 가죽을 벗길 거라 생각했는데~~~~ 밧슈, 너 예전에는 금발이었지? 왜 이렇게 새까맣게 된 거냐?"
이 거구, 전에도 생각했지만 정말 징그럽다. 소름이 끼치는 걸 참으며 빠져나갈 틈을 찾았다. 지난번에는 울프우드가 개입해 목숨을 건졌지만, 그때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울프우드와 함께 싸우는 게 너무 익숙해진 탓에 혼자일 때는 매우 다른 감각에 당황한 게 가슴을 스쳐 지나간다. 도움을 받는 게 당연해지는 거에 대한 두려움.
늘 혼자서 잘 했는데 이렇게 짧은 여정에서 몸에 벨 줄이야.
" ……저기. "
목소리에 유혹하는 듯한 색기를 머금고 비좁은 팔 안에서 고개를 움직여 자신을 붙잡은 남자를 올려다봤다. 이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면 조금은 마음이 끌릴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렇게 궁금하다면 너에게만 알려줄게, 내 비밀. "
"비밀……?"
흰자위가 많은 눈동자가 움직였다. 역시 잘 물었다.
" 그래…… 하지만 다른 사람이 알게 되면 부끄러우니 귀 좀 빌려줘. "
나는 몸을 비틀며 얼굴을 붉혀 보았다. 코웃음이 거칠어지는 걸 보니 효과가 있나 보다.
" 이, 이렇게?"
" ……응, 조금만 더. "
" 뜸들이지 말고 빨리 알려줘. "
성질이 급한 남자는 고개를 최대한 기울여 밧슈에게 다가왔다. 아주 좋은 각도다. 꼼지락한 덕분에 자유로워진 목을 휘두르며 힘차게 박치기를 했다.
" 크악!! ~~~~~~윽……!! 너……!!"
잠시 느슨해진 팔 사이로 빠져나와 착지하자마자 곧바로 돌아 총을 겨누었다. 연속 네 발. 남자의 무릎을 겨냥해 쐈다. 얼마 전 울프우드에게 당한 곳이다.
거구가 신음 소리를 내며 쓰러지더니 아프다고 뒹굴며 소리를 질렀다. "바보냐, 넌! 뭐 하는 거야!!” 장발의 남자가 외친다. 그러게 말이다.
" 흥, 이걸로 마음 놓고 구멍을 뚫겠군, 스탬피드…… 괴롭게 죽여주마. "
거의 원형으로 둘러싸여 모든 총구들이 중앙에 있는 밧슈를 향했다. 이렇게 되면 몇 개는 맞을 수밖에 없다. 혼자서 뚫고 나간다는 것이다.
누가 먼저 방아쇠를 당길지…… 감각을 세워 기척을 파악한다.
뒤에서 움직이는 미세한 진동.
동시에 공기를 가르고 다가오는 무언가의 소리가 들려, 밧슈는 조용히 호흡했다.
온다.
“ 이, 이건~~~~~~~!?”
휙하고 갑자기 날아온 미사일이 밧슈를 둘러싼 남자들 발치에서 폭발하고는 순식간에 포탄이 날아왔다. 주변은 순식간에 먼지로 뒤덮여 시야가 흐려졌다.
포탄이 날아오기 전에 뒤쪽 남자의 머리를 발판으로 삼아 뛰어올라 탄환에서 벗어난 밧슈는, 뛰어내린 바위 위에서 그 참혹한 광경을 넋 놓고 봤다.
" ……여전히 거치네. "
엄청난 공격력을 자랑하는 병기를 든 남자가 천천히 다가온다. 입에는 담배를 문 모습을 보는 건 어쩌면 재회 후 처음일지도 모른다. 니콜라스는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다.
울프우드는 지면에 뻗어 있는 남자들을 피하면서 밧슈가 있는 곳까지 훌쩍 다가왔다.
“ 네가 꾸물거려서 그래! ”
" 안 했어! 나름 힘냈다고. 그냥 네가 규격외야. "
" 이, 이건~~~~!? 스탬피드의 동료인가요? 가미에라 브래드포드 연합을 모두 쓰러뜨렸습니다~~~!!!! "
먼지가 가라앉고 승패가 가려지자 갑자기 리포트들이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밧슈가 겁에 질려 확인해보니 눈이 하얗게 뒤집힌 사람도 있지만, 죽지는 않은 듯했다. "걱정 안 해도 적당히 했다." 밧슈의 눈앞까지 다가온 남자가 그렇게 말했으나,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 너 어떻게 그걸…… "
“ 리비오가 가져왔어. 오~ 상처투성이가 됐네. 코트도 안 입고 이런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놈이 어디 있냐. "
팔을 잡혀 어깨에 찢어진 자국이 있는 것을 눈치 챘다. 그 어깨에 덮어준 것은 그가 집에 두고 온 코트였다.
" 미안, 네 셔츠. "
" 됐어. "
" 뭐…… 뭔가 서로 쳐다보면서 둘만의 세계에 빠졌는데 정말 누구일까요?"
전투가 끝났다고 해도 납득할 수 없는지 아직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
잘못 생각했다. 울프우드가 동료인 것 같아서 거리를 두려고 했지만, '어이쿠'라며 허리를 껴안겨서 도망치는 게 늦어졌다. 가깝다. 너무 가깝다.
" 나 누구냐고 물어보는데, 뭐라고 할까?"
" 뭐…… 너 좀 떨어져. 노맨스랜드 전체에 얼굴이 알려질 거야! "
" 이미 늦었잖아. "
"그건 그렇긴 한데……"라며 당황하는 밧슈를 가볍게 제압하며 웃은 울프우드는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넣었다.
" 뭐가 좋을까? 동료? 친구?"
" 앗, 잠깐, 이거 놔. "
" 친구에게 그런 키스는 하면 안 돼. 이쪽은 모처럼 참았는데 잘도 해줬지. "
우와.
얼굴을 감싼 손에 턱을 올리게 해 서로의 코끝이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 …………연애 행각 중이네요~~~~ "
" 금방이라도 키스할 분위기네요…… "
기자는 소근거리며 말하는 것 같지만, 스피커를 통해 전달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리고 이것도 중계로 흘러가는 걸까? 무섭다.
" 우, 울프우드……! "
"너 아직 대답 안 했잖아. 기억이 돌아와도 마음은 변하지 않아. 오히려 거절당해도 끈질기게 쫓아다닐 거고. "
" ……그거, 내 대답에 무슨 의미가 있어?"
밧슈는 기가 막혔다. 그토록 절망적인 심정으로 말했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
" 있지, 예스밖에 선택 못 하지만. "
" 〜〜〜〜윽, 너 정말……! "
" 그래, 이렇게 붙어 있는 모습이 찍혔으니 이제 변명도 못 하겠네. 나도 퍼니셔로 쐈고. 무슨 걱정이 더 있는데 그래?"
" 왜, 왜냐하면…… 이제 네겐, 돌아갈 곳이…… "
" 없어, 퇴직했으니까. "
" 뭐!?"
" 반한 상대와는 끝까지 어울리래. 명언이지?"
" ………… "
밧슈는 말문이 막혔다.
어떡하지?
'들뜨지 말자'고 생각하면서도 감췄던 마음이 점점 커져만 간다.
안 돼, 떨어져야 해.
떨어져서
잊어야만……
" …………미안했다. 다 기억났어. 다시는 잊지 않을 테니 함께 있어줘. 함께 살아가고 싶어, 빗자루. "
―'빗자루'
그렇게 불리고 싶었다.
계속 그 목소리로 한 번 더 불러주길 바랐다.
뭐야.
네가 사과할 일은 하나도 없는데……
말 한 마디도 전할 수 없는데, 눈가를 적시는 물방울만 뚝뚝 흘러내린다.
" ……그런 표정을 지으면 강제로 납치한다. "
" ……응. "
빨려 들어가듯 밧슈는 살짝 몸을 일으켜 얇은 입술에 키스를 했다.
헤어질 때 했던 키스는 너무 슬펐는데.
지금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 아, 앗……!! "
" 해, 해냈다~~~~~~!!!! "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운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한 번 입술을 떼니 다시 쫓아와 달려드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부드럽게 등에 팔을 둘렀다.
정말이네.
몰랐다. 키스 한 번으로 이렇게 참을 수 없게 되는 줄은.
*
충격적인 NLBC 중계가 끝난 후, '밧슈 더 스탬피드 결혼! 상대는 죽음의 문턱에서 부활한 불멸의 남자'라는 뉴스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울프우드의 얼굴은 순식간에 알려졌고, 소문에 따르면 팬까지 생겼다고 한다. 뭔가 축하 분위기에서 보도하는 NLBC의 입장을, 요즘은 잘 모르겠다.
" 메릴 일행이 없어진 후로 정말로 뭐가 뭔지 몰랐어…… "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자신들에 대한 뉴스를 들으며 사이드카에 앉아 있던 밧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메릴과 밀리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지만, 나름의 직책을 맡아 바쁘게 지내는 것 같다. 결혼 보도와 관련해서는 제대로 된 내용을 들으러 가겠다며 십을 통해 연락이 왔다. 더불어 루이다도 한 번 둘이서 같이 오라는 말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 뭐, 번거로움을 덜 수 있으니 좋죠. "
운전 중인 남자는 자신이 크게 주목받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 신혼여행 중인데 취재하러 오는 건 좀 성가시지만…… "
" 그래…… "
지난번에 머물렀던 동네는 NLBC에 밀린 덕에 승부를 걸어오는 놈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힘들었다. 일단 방송국을 뿌리치지 않으면 신혼여행은 꿈도 못 꾼다. 자신은 물론 울프우드까지 얼굴이 팔려 있으면 어디를 가도 소란스럽다.
" 십에 들르는 것도 좋겠네. 다음 도시에 도착하면 생각해 볼까?"
" 응…… "
“ 하아……”하고 한숨을 쉬자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 왜?"
" 아니, 난 예전부터 금발이 예쁘고 좋아했어, 오래전부터. 하지만 지금 그것도 좋네. 잘 어울려. "
오래전부터라고.
울프우드는 요즘 이런 식으로 기습을 자주 당한다. 그럴 때마다 온몸이 달콤하게 녹는 것 같아서. 밧슈는 상당히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런 분위기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 ……앞을 보고 운전해 주세요. "
" 앞을 봐도 재미없잖아. 그야 미인 쪽을 보잖아. "
" ……이, 일단 앞만 보고 운전해! 이쪽 쳐다보는 거 금지! "
그래, 살생 등을 기대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선글라스를 섰다. 얼굴이 붉은 건 햇빛 때문. 목소리를 무시하고 선글라스를 걸었다. 얼굴이 뜨거운 것은 햇빛 때문. 그것뿐이니까.
그런 점에서 옆자리에 앉아있기만 하지만, 높으신 분들은 매우 도움이 된다. 얼마든지 옆모습을 훔쳐볼 수 있다.
" …………누군가가 힐끗힐끗 쳐다보는데…… "
" ……! "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 위, 두 사람의 목소리가 바람에 섞인다.
목적지는 어디든 상관없다. 보고 싶은 광경은 언제나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마지막 순간까지 네 곁에 있을 것이다.
